October 6 Prayer Changes You
Yet now, if You will forgive their sin-but it not, I pray, blot me out of Your book which You have written. Exodus 32:32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맞춰가는 과정이다. 분명 잘 알고 있지만, 막상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에 관한 생각보다는 내 생각을 그저 읊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물론 하나님이 뜻이 무엇인지 관심이 없는 때도 있고, 혹 관심이 있다고는 하나 사실 내 뜻이 더 중요해질 때도 있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니 내 뜻대로 기도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도 사실이며 그러다 보니 일단 내 기도를 하고 누가 보아도 명백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라는 선교나 세계 평화 등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도 물론 내 판단이나 기우겠지만.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모세처럼 목숨을 걸고 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본문을 읽을 때마다 모세의 자세에 대해 전율을 느낀다.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하는 모세의 마음은 어떨지. 무엇보다 그런 모세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같아서 하나님이 그들을 향한 심판을 몇 번이고 모세의 중보로 인해 미루고 미루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결정이 번복되지는 않았지만 그 심판의 방법은 바뀌었고 결국 광야를 돌고 돌아 40년을 미래 세대를 위한 준비의 기간이고 전쟁을 대비하는 기간들이었다고는 하나 결국 그 불순종의 세대들은 광야에서 죽고 그 약속의 땅, 가나안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이 주는 울림은 참으로 크다. 타인을 위해, 그가 이끌었던 양들을 위한 모세의 마음은, 어쩌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올 수 있었던 예표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백성을 위해 목숨을 버리고, 그 백성은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한 것이 1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백성을 위해 자신의 목숨과 영혼까지 버릴 수 있다는 그 신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구원하고 싶다는 지도자로서의 열망, 목자로서의 진실한 마음. 중보 기도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느끼며 다가갈 수 없는 벽, 완벽을 느끼지만 나와는 참으로 멀어 보이는 모세를 보며, 참으로 큰 울림이지만 어쩐지 멀어 보이는 비현실 세계의 지도자를 보는 듯, 어쩌면 이 현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런 큰 차이가 느껴지는 오늘 본문이다. 물론 내가 모세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꾸준하게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그 중보 기도라도 주님이 사용하신다면 그것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까 하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소소해 보이고 약해 보이는 나의 중보의 길을 가야 하지 않을까 작게나마 다짐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