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26 Contentment Philippians 4: 11
Not that I speak from want; for I have learned to be content in whatever circumstances I am. Philippians 4: 11
만족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이 적용되는 것 같다. 나의 만족 지수가 낮을수록 세상은 더 아름답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 같다. 다른 말로 하면 욕심이 별로 없는 것이다. 이 욕심도 굉장히 개인적인 개념일 수도 있다. 어느 정도가 욕심이고 만족인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기준으로 만족한다거나 더 많은 것을 원한다고 규정지을 수 있다. 나는 대체로 나의 삶에 만족하는가는 자신에 대한 이해에서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난파를 당하고 배신도 당하면서도 모든 상황에 자족함을 배웠다고 했다. 타인의 기준에서 보면 별로 만족하거나 기쁠 상황은 아닌 것이다. 혹은 그가 믿는 하나님이 그에게 허락하는 가혹한 상황에 대해 좌절하거나 믿음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을 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고 모든 상황에 자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는 기쁨과 만족의 기준이 세상의 그것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주의 복음을 위해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을 기쁘게 여겼기 때문이다. 행복이나 만족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달랐기 때문이다. 내가 만족하는 기준은 내가 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상황에 있는지 판단해보면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만족할 수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반대로 더 비관적이 될 수도 있겠다. 문제는 그 결정을 자신이 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같은 상황에 처해있지도 않고 같은 기준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가끔 세상은 네가 성공했다면 이 정도의 아파트, 차, 혹은 이런 취미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은 저 마다의 기준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야 하고 그 삶은 참으로 다양하다. 획일적으로 성공과 행복도 판단할 수 없는 다양한 삶 속에서 자신을 정확히 바라보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것이 오늘의 기쁨을 줄 수 있다. 물론 반대로 만족하지 못해서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경우도 난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사회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고 내가 이룰 수 없는 것을 단시간 내에 이루려고 하다 보면 심각한 부작용이 일어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들여서 조금씩 조금씩 성장한다는 것을 결국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로 결정된다. 성공 혹은 행복한 삶에 지름길이나 요행은 없다. 그러니 자신의 상황을 너무 비관하지도 혹은 미리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인생은 길고 그 인생길에서 분명히 기회가 온다고 하지 않는가? 그 기회를 잡는 사람은 오늘 하루 조금씩 할 수 있는 일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오늘 하루를 만족하고 내가 오늘 누릴 수 있는 것에 감사하는 하루이기를 바라고 희망을 놓지 않기를 바란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기회는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그것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그 기회를 기다리며 오늘 하루를 성실하게 보내는 사람일 확률이 높고 매일의 만족이 있어야 오래 걸어갈 수 있다. 그러니 그 선택은 전적으로 나다. 그리고 그 선택은 생각보다 많은 다른 결과들을 가져다 준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너무 쉽게 예단하거나 미리 절망하지 말고 오늘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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