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8 Be Anxious for Nothing
Be anxious for nothing, but in everything by power and supplication, with thanksgiving, let your requests be made known to God; and the peace of God, which surpasses all understanding, will guard your hearts and minds through Christ Jesus. Philippians 4: 6
걱정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자연스럽게 걱정될 뿐이다. 처한 상황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지만 예견되는 결과들이 있을 때 걱정을 한다. 하지만 대체로 걱정의 70% 이상은 오지도 않을 상황에 대한 걱정이라고 한다. 나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하는 걱정의 대부분은 아직 오지도 않고 올 확률은 낮지만 대비하기 위해 하는 걱정들이다. 걱정을 하는 이유는 미리 예측하고 그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기제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넋 놓고 있다가 허둥지둥하는 것 보다 미리 다가올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혹 내가 옳은 결정을 하려는 대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걱정들 또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일 때가 많다. 뭐 뾰족한 수가 없어서 그냥 다가올 미래에 대해 걱정할 뿐이다. 그러니 사실 뭐 별반 걱정으로 이익을 보는 것은 없지만 확실히 손해를 보는 것은 바로 걱정으로 인해 내 마음과 몸이 상하는 것이다. 마음 고생만한 다이어트는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만큼 마음이 상하게 되면 몸도 상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마음과 몸이 무너지면 잘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어려움을 피하게 하지 않게 하시는 이유는 그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이 동행하심을 깨닫게 하고 그분에 대한 신뢰를 더 공고히 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한 때는 왜 이런 고통을 허락하시는지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이 많았다. 물론 지금도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대체로 여러 상황들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지금은 문제 해결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역사하실 하나님을 기대한다.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죄 가운데 태어나 죽는 인생에서 어려움과 고난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럼 도대체 왜 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인가를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어쩌면 공로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교회에서 이런 저런 봉사를 했는데, 그래도 내가 주님을 위해 이렇게 저렇게 섬겼는데. 왜 이런 고통을 내게 주시는지 물었던 것 같다. 사실 그런 일들은 하나님에게는 그리 큰일이 아닌데도 내가 한 일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인생을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인간이기에 경험할 수 없는 어려움들이 있고 그 어려움을 통해 내가 성장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또한 타인의 어려움과 고난에 공감하게 되고 나의 고난과 고통이 타인을 위로할 수도 있으며 그런 어려움과 고난 속에 나를 홀로 두지 않으시고 나를 도우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게 되고 그런 과정들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되고 다가올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여전히 삶은 어렵고 고통스럽고 또한 예측 불가능한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갯속에서 나를 인도하시고 내 발의 등이 되시는 말씀을 붙잡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며 그 등을 따라 오늘 하루를 그 말씀으로 시작하는 이 일이 결국 마지막까지 나를 그분이 계시는 곳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다시 한번 오늘을 살게 될 용기를 가지고 그분의 성실하심에 기대에 이 아침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