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1 Painful Reminders Acts 14: 19
Then Jews from Antioch and Iconium came there; and having persuaded the multitudes, they stoned Paul and dragged him out of the city, supposing him to be dead. Acts 14: 19
잘못을 하고 나서 반성을 하는 경우는 기실 많지 않다.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된 배경을 생각해 보기 전에 나에게 해를 끼치거나 잘못을 한 사람을 정죄하기 바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그 상황과 사건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대체로 내 잘못일 경우가 많고 그 억울한 감정들은 조금씩 사라지며 그 일을 잊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을 사용하셔서 우리의 잘못을 잊지 않도록 그리하여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우리를 이끄시며 성장시키신다. 사실 그 순간과 상황이 그리 달갑지 않다. 성경을 읽을 때도 복을 주신다는 말씀은 아멘이 절로 나오지만 징계와 저주가 있는 말씀은 아멘을 하기 어렵다. 그리고 얼른 그 상황을 넘기려고 한다. 하지만 축복과 저주는 종이 한 장 차이도 나지 않는다. 안 좋은 일이 있더라도 그 사건을 통해서 내가 깨닫고 배운다면 그것은 축복이며 혹 좋은 일이 생겨서 내가 자고 하고 스스로 높아진다면 그것은 저주나 진배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이런 깨달음은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는 맹점이 있다. 그 순간에는 쉽게 내 감정을 조절하기 어렵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기 어렵다. 요즘은 복잡한 나들목에서 차선 변경해서 들어가는 일이 계속해서 내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잘 차선 변경을 했는데 한 번 사고가 나서부터는 쭈뼛쭈뼛하다가 경적을 듣고 멈추기도 하다 보니 친절한 이웃에게는 너무 고마운 반면에 그렇지 않은 운전자에게는 정말 욕이 나온다. 그리고 실컷 욕을 하고 나면 사실 빨리 지나가는 차 앞에 천천히 끼어드는 나한테 욕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나중에서야 든다. 시간이 지나고. 잘못은 사실 내가 한 것인데. 어쩌겠는가. 이렇게 계속해서 반복적인 상황을 통해서 좀 더 좋은 운전자가 되어 가겠지만 여전히 주차선과 비켜 나가는 내 주차 실력도 점점 나아지겠거니 노력을 하고 있다.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포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욕만 해서는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니 내가 맞춰가는 수밖에 없고 좀 더 나은 운전자 이웃이 되는 수밖에 없다. 오늘 본문은 상당히 진지한 내용이다. 돌을 맞은 사건은 스데반 집사와 사도바울의 사건만이 유일하다. 그리고 그 두 사건에 연루된 사도 바울의 이야기가 오늘의 핵심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지만 그 죄로 인해 겪는 결과들에 대해 분명히 다시 말씀하시고 다시는 그 죄의 영향아래 있게 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해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신다. 아프지만 그 일로 인하여 우리가 다시는 같은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신다. 죄는 그런 것이다. 쉽게 혹은 가볍게 대할 성격이 전혀 아니며 나의 잘못된 선택이 계속해서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 아픔을 계속해서 당한다고 생각하기도 싫다. 그러니 오늘 나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며 그 죄의 길에 서지 않기 위해 피하고 도망 다녀야 할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오늘을 그렇게 조심스럽게 그리고 겸손하게 사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